오늘 글의 제목이 좀 이상하죠? 저의 믿음의 시작은 절망에서 피어난 꽃이었습니다. 인생은 참 재미없는 일이지요? 특히 남자의 인생은 더더욱 재미없는 인생인 것 같습니다. 남자는 허세를 좋아하여 남들보다 더 뛰어난 모습으로 여자의 자랑이 되기를 좋아 하는 것 같습니다. 이름하여 출세라는 걸, 그 출세라는 것이 별것있나요? 다 돈 이야기죠. 요즘 연얘 기사들을 보면, 모두 돈 이야깁니다. 어느 연예인이 주식을 했는데, 그 동안 200억을 굴렸데, 한 할머니 연예인이 20년간 뭍어둔 주식이 200배로 튀어 돈 방석에 앉았데, 이런 기사에 눈이 가는게 남자입니다.

없는 놈이 이 돈을 쫒으면, 뭔가 잃는 것이 있게 마련입니다. 연예인들은 그 알량한 재주로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그 이목으로 돈이 모이고 이를 굴려 이차 성장을 합니다. 대부분 부동산을 통해 성장을 합니다. 어차피 돈은 어딘가에 두었어야 했을테니까요.
믿음 이야길 하다가 돈으로 갔네요? 저의 경우 돈을 얻으려다 잃는 것이 있었습니다. 이건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관되게 경험하는 거겠지요. 노동력은 돈과 비례하여 남들 10시간 일할 때, 난 16시간 일을 해서 돈을 법니다. 궂이 시간제 일을 하지 않더라도 남들보다 더 노력을 했다는 거겠지요. 대기업 빌딩에 불이 꺼지지 않는 모습을 봅니다. 그 안엔 개미처럼 일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정말 정력적으로 일을 합니다.
퇴근은 늦어지고 주말도 없고, 가족은 멀어지도 아이들 얼굴 볼 시간도 없이 시간이 지나갑니다. 자는 아이보고 출근해 자는 아이 보고 나도 잡니다. 인생은 그렇게 50을 향해 빠르게 흘러갑니다. 그리고 훔짓 나를 돌아 봅니다. 뭐했지? 아이 낳고 그리고… 다음 말이 궁색합니다.
부부 사이는 덤덤해졌고, 돈은 모였을지 모르지만, 아내는 운동하러 골프치러 가고, 이 사람 저사람 만나 술도 한잔하고 어차피 남편이 없으니 그렇게 시간을 보냅니다. 적절히 즐기며, 가정이란 울타리만 지키며 지내는 거죠.
몸은 나이가 들어 이곳저곳이 힘들어지고 간이 상했네, 혈압이 당뇨가 있네 하며, 내가 왜 이러지 할 때, 우린 인생이 허무해집니다. 회사에선 나름 인정받는 사람이고 술도 잘 마시는 것도 능력이라며 껄껄댔던 상무님이지만, 문득 한늘이 눈에 들어 왔을땐, 텅비고 시커먼 블랙홀로 마꾸 빨려들어가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전 이럴 때, 믿음이 들어 왔어요. 더 할 것이 없을 때, 해도 별 볼일이 없을 때, 그 때 상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일독은 모든 것을 놓고 오로지 성경읽기만 하며 21일만에 통독을 마쳤습니다. 눈뜨고 잘 때까지 소리내어 성경을 읽었고 혀가 갈리지는 것 같은 느낌과 몸에서 힘이 빠지는 걸 느끼며, 일독을 마쳤습니다. 아마 하루에 16시간을 읽었던 것 같아요. 전 눈이 파래질 줄 알았어요. 세상이 완전히 가르게 보일 줄 알았는데, 아무 것도 달라지는 건 없었어요.
일독은 내게 많은 의미를 주었지만, 내겐 아무런 깨달음은 없었어요. 뭐가 뭔지도 몰랐고 성경의 많은 사람들과 그들의 이야기들이 전혀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뭐가 뭔지도 모르면서 그냥 글자를 소리로 바꾸었을 뿐입니다. 이후 난 통독은 하지 않았지만 성경 읽기를 계속했습니다. 1년에 4독도 해보고 그렇게 지금은 18독에 이릅니다. 첫 일독으로 하고 이제 16년차가 됩니다.
그 동안 제 주변엔 어떤 일이 있었을까요? 많은 일이 있었지만, 그건 나중에 틈틈이 나누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성경은 아부 것도 모르고 읽었던 시기, 그땐 정말 많은 질문이 있었던 시기였고, 아마도 8독을 했을 때, 나느많은 질문이 사라지는 걸 느꼈습니다. 그리고 12독 뭔가 성경을 읽는 방법이 아니 나의 믿음이 달라져야 한다는 생각을 했고 그 다음부터 성경 읽기를 거의 중단하다시피 했지요. 사실 그때부터 성경이 다르게 보이던 시기였습니다. 이제 18독 성경이 내게 다른 말을 하기 시작합니다.
12독이 넘으며 나는 공부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신학은 믿음을 깨뜨리는 일이라고 생각했고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이 되기를 바랬습니다. 그냥 문자 그대로 그렇게 받아들이고 그 뒤, 그 앞, 배경 이런 것에 관심을 갖지 말자 했지만, 성경 전체가 보이기 시작하면서 성경이 내게 다른 말을 하는 걸 느낍니다.
내가 무엇이 잘 못되었는지를 생각하고 중심을 잃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성경을 몇 번 읽었을 때, 교회에서 장로님과 성경 공부를 할 때였어요. 전 궁굼한 것이 있어 장로님에게 물었습니다. 이건 왜 이런 건가요? 했더니 그 장로님은 매우 역정을 내며 무슨 그 따위 질문을 하느냐며 나를 나무랬어요. 사람들 몇명이 있었는데, 그중 한사람이 장로님 그런거 물어 볼수도 있죠 하면서 나를 두둔했지만, 난 그 때의 그 망신을 잊지 못합니다. 교회는 질문을 하는 곳이 아니라며 절대 묻지 않았습니다.
한 미국 교회에서 둥근 테이블에 모여 목사님이 잠시 성경 일부를 이야기하고 그것에 대해 토론을 하는 모습은 왜 한국 교회엔 없는 건지, 참 부럽기도 했지요.

전 그렇게 입을 다물고 혼자 묻고 혼자 답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이 일부 내 마음에 거부감이 있는 것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난 크리스천입니다. 난 더 깊은 믿음으로 들어가고 싶은 사람입니다. 하지만, 사도신경의 일부는 입에서 겉도는 소리가 됩니다. 이걸 왜 해야 하는지 정말 묻고 싶어요.
난 이런 이야길 나누고 싶어요. 내가 입을 여는 순간 난 '이단'이 될 겁니다. 하지만, 나 속엔 바른 걸 알고 싶고 그래서 묻고 싶을 뿐입니다. 교회의 성경공부 시간을 통해 질문이 마치 죄가 되었던 그 벽을 조용히 누군가와 헐고 나누고 싶을 뿐입니다.
(함께) 나누고 싶으시면, turboson@gmail.com (James)에게 연락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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