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오래오래 건강하게 서로 아끼며 살자”
오늘따라 이 말이 내 귀에 꽂힌다. 사람은 각 나이에 맞는 말을 사용하고 각 나이에 맞는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살 날이 많아서 그랬나? 미음에 드는 내 곁에 두고 사는 것, 내게 맛있는 반찬을 해주고, 내 아이를 키워주고, 나의 편안한 잠자리를 만들어 주는 것이 여자였던가?
“내게 필요한 여자”
그래서 주방에 들어가는 것은 여자의 일이고,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것도 여자의 몫이라 아이와 한번을 함께 놀아 보지 못한 남자로 살았다.
남자는 돈을 벌고, 늦게 퇴근하고, 밤늦게까지 술을 먹고 집에 돌아와 여자의 수발로 쓰러지듯 침대에 눕고, 여자의 도움으로 넥타이를 풀고 양말이 벋겨지고 그렇게 잠드는 것이 당연하다고 했던 그 시절이 있었다.
그 여자가 내 곁에 있다.
쳐진 눈과 늘어진 턱선, 적당히 나온 배에 아무렇게나 입은 옷에 한쪽 다리를 구프리고 빙긋빙긋 웃으며 TV를 보는 그 여자가 내 곁에 앉아 있다.
모진 세월 말한마디 하지 않고 혼자의 시간을 보냈을 그 여자가 웃는다.
“에구 저런, 저러면 안되는데…”
나는 일어나 한발을 들고 양말을 신지 못하고 침대에 걸쳐야 양말을 신을 수 있는 그런 나이가 되었다. 이제야 가련한 아내의 모습이 내 눈에 들어 온다.
긴 출장으로 혼자 병원에서 죽음을 목전에 두며 수술을 견디더야 했던 나의 아내, 말썽 부리는 아이들을 붙잡으러 혼자 울며 밤거리를 뛰어 다냤던 아내. 쓰러진 시어머니를 밤새워 간호하고 머리를 감겨드렸던 아내. 힘들어 소리치는 나의 모습에 “잘 될거야. 주님이 당신을 도우실거야”로 위로하던 아내.
그 아내 곁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어진 나는
이제야
“우리 오래오래 건강하게 서로 아끼며 살자”라는 낮은 목소리로 말을 한다.
'우리가 사는세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러브버그: 사랑의 짝이자 산 정상의 침입자 (2) | 2025.07.01 |
---|---|
문재인은 왜 홍범도 장군을 옹호하는가? (0) | 2023.09.04 |
우리는 대한민국이 사라질 것을 걱정하지 않는다 (0) | 2023.03.31 |
아스트라제네카 싸지만 효능이 좋다지만, 혈전 관련 있다. (0) | 2021.05.19 |
'이재용 사면' vs '이재용 무죄' (0) | 2021.04.29 |